스탠포드 대학교 창립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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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대학교 창립 역사

KRONNA 2016.07.17 12:14

(스탠포드 대학교 정문)


철도 산업이 미국 최고 부호들을 배출해내던 1800년대 중반, 스탠포드 레일웨이는 미국의 4대 철도 중 하나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대기업 총수와 같은 부와 지위를 자랑하던 릴랜드 스탠포드 회장은 공화당의 리더, 캘리포니아의 주지사, 그리고 미국 국회의 상원이 되어 막강한 정치적 권력도 부여잡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아내인 제인 스탠포드에게는 릴랜드 스탠포드 주니어라는 명석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똑똑한 아들은 당당히 하버드 대학교에 합격하였죠. 하지만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떠난 유럽 가족 여행에서 스탠포드 주니어는 안타깝게도 장티푸스에 걸려 16살 생일을 넘기지도,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지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스탠포드 부부는 유일한 아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릴랜드 스탠포드 회장은 슬퍼하는 아내에게 다가가서 다독여주며 말합니다. "여보. 그렇게 슬퍼할 것 없소. 캘리포니아의 아이들을 우리의 아이로 삼으면 되는 것이오. 그들이 우리 아들이 이루지 못 한 모든 것들을 대신 이뤄줄 것이오". 그 후 스탠포드 부부는 짧은 생을 살았던 아들을 오랫동안 기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수색을 떠납니다. 스탠포드 부부는 여러가지 선택을 고려해 보았습니다. 하버드와 MIT 등 동부 최고의 대학들을 방문해 조언을 구하고 돌아온 스탠포드 부부는 대학교와 박물관 중 무엇을 지을까 고민하던 도중 둘 다 지어도 재산이 남는다는걸 확인하고는 박물관을 포함한 대학교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디자인한 당대 최고의 아키텍트, 프레드릭 로우 옴스테드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말이죠. 스탠포드 대학교가 크게 성장할 것을 예견한 옴스테드의 선견지명 덕분에 스탠포드 대학교는 현재 짓는 건물들도 100년 전 지은 건물들과 어울리는 건축 양식으로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캠퍼스)


전설에 따르자면 스탠포드 부부가 하버드 대학교에 방문했을 때 그들은 허름한 옷차림으로 방문한 탓에 푸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찰스 엘리엇 총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비서는 그들의 방문을 전달하지 않고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하였고, 총장은 마지 못해 만나주었습니다. 심지어 스탠포드 부부가 그들의 아들이 다닐 계획이었던 학교에 아들에 대한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기부를 하겠다고 제안하자 부부의 옷차림을 보고 그들의 재력을 깔본 총장은 "학교 건물 건축에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지 아십니까? 죽은 학생들 모두를 위해 비석을 세웠다간 하버드가 묘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물 건축에 드는 비용을 들은 제인 스탠포드는 화를 내며 "고작 그 정도의 돈이면 건물을 하나 짓는다고요? 여보. 일어나요. 우리가 직접 대학교를 하나 새로 건설하죠!"라고 얘기하며 방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하버드 총장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 스탠포드 부부의 전설은 재미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스탠포드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는 스탠포드 부부와 찰스 엘리엇 총장이 주고 받은 편지들을 통해 사실 찰스 엘리엇 하버드 총장이 스탠포드 대학교의 계획과 건설에 진심어린 조언을 듬뿍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방문했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릴랜드 스탠포드를 알아보지 못 했다는건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죠.



(스탠포드 대학교의 메모리얼 성당)


스탠포드 대학교는 시작부터 당시엔 혁신적이었던 제도들을 도입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남성만 받을 때 남녀 공학으로 열었으며, 대부분의 대학들이 종교와 관련되었을 때 그 어떤 종교에도 소속되지 않았습니다. 릴랜드 스탠포드의 막대한 부를 업은 스탠포드 대학교는 성별, 인종, 종교에 관계 없이 열정과 재능이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문과, 이과, 예체능 중 어디든 부족한 분야가 생길때마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해서 그 분야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수준으로 올려놓기도 하였죠. 덕분에 스탠포드 대학교는 개교한 첫 해부터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 미국 제31대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졸업생들을 배출해냈습니다.


기업가가 세운 대학교 답게 그 목표 또한 굉장히 실용주의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인류의 지식을 늘리는 것에 집중할 때 릴랜드 스탠포드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목표를 "학생 개인의 성공을 통해 인류와 문명에 미치는 직접적 유용함"을 길러내기 위해서라 정의했습니다. 스탠포드 출신 기업가들이 창업을 통해 스스로 부를 축적하는건 물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릴랜드 스탠포드의 이러한 바람이 실현된 거라 볼 수 있죠.



(스탠포드 대학교 메인 광장에 위치한 로뎅의 "칼레의 시민들")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하루에도 몇번이나 지나다니는 메인 광장에는 로뎅이 조각한 "칼레의 시민들"이 그 가치에 어울리지 않게 덩그러니 위치해 있습니다. 누구든지 걸어가서 들여다보고 만질 수 있게 말이죠. 영국의 공세를 오랜 시간 막아낸 프랑스 도시 칼레가 항복을 선언했을 때, 영국의 에드워드 3세 왕은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낭비시킨 칼레를 괴롭힐 방법을 궁리합니다. 그리고 칼레를 잔인하게 도덕적으로 굴복시킬 예정으로 에드워드 왕은 그들에게 "내일 아침까지 6명의 시민을 골라서 스스로 처형한다면 나머지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살아남은 기쁨과 함께 무고한 누군가를 골라서 죽여야한다는 절망감, 그리고 자기가 지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모두가 조용히 있을 때 칼레의 가장 부유한, 그리고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섯 귀족들이 일어납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자, 혹은 지은 죄가 무거워 죽어 마땅한 자들을 골라 처형해도 상관없었을텐데, 가만히 있었다면 그 누구도 감히 지목하지 못 했을 6명이 칼레의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마음 먹은것입니다. 이 용기에 감동한 영국의 필리파 왕비는 에드워드 왕에게 그들을 살려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용감하게 자기들을 포함해 칼레의 모든 사람들을 지켜낸 이 여섯 명의 영웅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가진 자에게 따라오는 책임"에 대한 교훈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들은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으로 뛰어나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스탠포드는 그 어떤 학생에게도 학업적 성취도에 따라 제공하는 메리트 장학금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다른 대학에서 메리트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스탠포드에 입학할 수 없다"고 얘기하죠. 스탠포드는 대신 그 돈을 필요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만큼 제공하는 니드 장학금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학생들은 스탠포드 대학교에 합격하기만 하면 필요에 따라 학비의 부분 혹은 전액, 그리고 도착하는데 필요한 비행기 표와 생활하는데 필요한 용돈까지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스탠포드의 학생들은 학비에서부터 "자기가 가진 만큼, 자기가 줄 수 있는 만큼을 사회에게 제공한다"는 개념을 배울 수 있습니다. 뛰어난 재능과 풍부한 지원을 받은 스탠포드 학생들은 릴랜드 스탠포드의 바람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그의 죽은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이 세계에 가져왔을지도 모르는 긍정적인 영향들의을 모두 대신 이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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